2023년
1월
늘 떠오르는 생각이 매년 1월은 왜 이리 빨리 가버리는 것일까이다. 연말의 아쉬움과 쓸쓸함을 안고 그래도 새해가 되었으니 새로 시작하는 기분으로 분위기를 띄어보다가 이내 한 달이 뭐하다 끝났나 싶게 초스피드로 흘러가고만다. 날도 춥고 가끔씩 동행하던 지인도 잠시 외국으로 가시니 애써 기운을 내보려던 여러 계획들이 그렇게 잘 돌아가질 않는다.
영화도 그렇다. 죽을 고비를 넘긴 심장 수술 후 아빠, 엄마까지 떠나시고 감정을 추수르기 위해 힐링 위주의 영화를 보고, 또 주변에서도 밝은 작품들을 권해 주어서 나름대로 영화감상으로 기운을 얻은 것이 계속 이어지니 아직도 무겁고 심각하거나 극단의 폭력이나 최루성 소재들의 이야기를 예전처럼 보기가 어렵다. 워낙에 정의감에 불타고, 독특하거나 괴이한 소재들을 가리지 않는 취향이었기에 장르 구분 없이 심오한 예술 영화까지 흥미로웠는데, 이제는 마음이 불편해지거나 감당하기 힘든 것들은 좋은 작품성을 인정 받은 것들도 꺼려지는 것이다. 그러니 다소 단조롭고 심심한 영화나 드라마에 치우치는 경향이 생겨 사실 재미는 없다.
그런데 혼자서 심신을 돌봐야하고, 정신 건강의 위태로움을 스스로 인정할 수 밖에 없기에 당분간은 안전한 쪽을 택할 것 같다. 사실 내가 겪은 일이지만 몇 년간의 태풍에 쓸린 것 같은 그 일들이 시간이 좀 흘렀다고 감쪽 같이 회복될 것 같지 않다. 사람의 마음이 마음 먹은데로만 움직이면 누가 우울증에 걸리고 공황장애에 시달리겠는가. 정신적 질환은 본인의 의지와 별개의 것이라 알고 있다.
아무튼 시끄러운 세상사에서 나 혼자의 삶을 어떻게든 온전하게 이어나가기 위해 오늘도 조금씩 노력해보기로 한다. 세상의 거울이고 치유의 에너지를 담은 영화들과 드라마의 힘을 얻으면서... 거기에 더해서 웃음치료 효과의 예능과 다양한 지식제공의 교양을 겸한 요즘 TV프로그램 중 지혜를 얻기에 좋은 몇몇 프로그램도 눈에 띄고 있어 기대가 된다. 종결이 되어 아쉬운 '알쓸인잡'과 10회 김창욱 편이 워낙 좋았던 '일타강사' 그리고 오락적으로 큰 임팩트가 있는 '설치혀'는 파일럿으로 나왔을 때 큰 인상을 주어 2월부터 정규 프로그램으로 시작하면 지켜보려한다.
-영화관 * 1편, 집에서 19편(드라마 시리즈는 한 시즌을 1편으로)=20편

<원더풀 라이프>-2001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이동진 평론가 추천작이라 보게 되었는데, 죽은 후 행복한 순간을 재현하게 한다는 설정에 뭔가 울컥하게 한다. 다큐 느낌이 과하고 사사로운 인터뷰가 반복되고 매우 느려 뒤로갈 수록 피로도가 느껴진다.

<컨피던스 맨 jp 영웅편>-주인공 일당의 큰 그림이 후반에 나오는 사기극 시리즈의 최근작. 엔딩에서 쿠키 영상도 유쾌하다. 추천!

<주식회사 스페셜액터스>-심약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주인공과 같은 소심한 사람들에 대해 웃기면서 공감도 간다. 사이비 종교의 교활한 범행에 새삼 화도 나는 가벼운 코미디물. 추천!

<나이트메어 앨리>-탐욕의 끝은 결국 파멸이란 쓸쓸한 이야기. 기괴하고 음습한 비주얼과 스릴러가 고전적 매력을 느끼게 한다. 연기 대가들이 대거 출연해 볼 것이 많다. 추천!
<유령>/롯데시네마월드타워-비주얼의 완성도가 높은 일제항쟁 시대극이나 중국소설 원작에서 오는 약간의 간극이 느껴진다. 추천!

<낮잠 공주: 모르는 나의 이야기>-여러 애니메이션들의 조각들이 모인 느낌이나 판타지의 영상은 괜찮은 정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한 편의 실험적인 비디오 아트 작품으로 느껴지는 획기적인 영화. 메타버스 설정에서 반복되는 무협 결투가 계속되고 스토리텔링 적으로 산만함도 커서 흥미면에서 반감되는 기분이 들었다. 양자경의 특화된 무술 액션 영화로 좋고, 남편 역은 <인디아나 존스>의 그 동양인 꼬마(베트남)란다. 장난스런 코미디도 볼만하나 아카데미 10개 부문 후보로 올랐다는 점은 좀... <헤어질 결심>은 못 올랐고... 추천!

<킹스 도터>-프랑스 만세를 외치면서 대사는 영어라니... 괜찮은 배우들을 모아서 이 정도의 동화를 만드는 건 좀....

<버려진 고양이를 주운 남자>(단편)-고양이에 대한 소소한 일상 드라마.

<오! 마이 보스! 사랑은 별책으로>(10부작)-캔디의 오피스 버전이랄까, 뻔한 듯하지만 패션 잡지사 초짜 사원의 일과 사랑을 트렌디하게 그려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추천!

<두뇌공조>(부작)-차태현이 나오니 일단 웃음이 기대된다. 예상대로 코믹하고 가벼운 재미가 쏠쏠하다. 추천!

<어게인 마이 라이프>(16부작)-매번 반복되는 악역(이경영) 캐릭터에다 무게감있는 명분까지 얹은 것부터 불편하다. 거기에 이준기의 특기인 태권도 등의 액션을 위한 기획적인 장면, 후반 갑자기 헛점을 보여 급하게 위기를 만드는 것 등 <재벌집 막내아들>과 비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부패한 검찰 카르텔과 정치권력 소재를 신랄하게 다뤘고, 리셋된 인생살기의 구미 당기는 설정으로 재미는 있었다. 배경음악으로 홀스트의 행성 중 '목성'이 주제 테마로 사용되어 점성학 의미적으로 미래나 희망을 내포하는 장엄함이 잘 어우러진 것은 인상적이다. 강력 추천!

<더 글로리>(8부작)-학교폭력에 대해 아는 바도 경험도 없지만 복수극에 전적으로 공감하게 하여 몰입하며 봤다. 3월에 시즌2가 기대된다. 강력 추천!

<이시코와 하네오-그런 일로 고소합니까?->(10부작)-아리무라 카스미가 출연하는데, <망각의 사치코> <메종 드 폴리스>의 타카하타 미츠키와 닮아 많이들 헷갈릴 듯하다. 아무튼 남녀 주인공(변호사와 사무관)의 캐릭터의 합도 좋고 인간적 에피소드와 후반부의 큰 사건까지 아기자기하게 볼만한 드라마. 강력 추천!

<언성 신데렐라 병원 약사의 처방전>(11부작)-종합병원 약사들의 숨은 활약을 중심으로 한 메디컬 드라마. 가슴 찡한 다양한 환자들의 사연이 잘 그려졌다. 다만 병원 생활을 오래해 본 사람으로서 수술 후 복약상담실을 자주 다녀서 친절한 약사님 신제를 졌지만 극에서 처럼 전방에 나와 활약을 하는 약사라는 설정은 비현실적인 듯. 강력 추천!

<고독한 미식가 2020 SP>(단편)-참 오래도록 혼밥을 드시는 아저씨의 연말 특집 먹방. 새우튀김은 보면서 조금 참기 힘들긴 하다.

<코타키 형제와 사고팔고>(12부작)-꾀죄죄한 무직의 형제의 궁상맞은 모습과 대행 알바의 소소한 에피소드가 은근하고 디테일한 코미디 드라마. 작지만 세세한 일본적 감수성이 잘 담긴 코미디 드라마. 강력 추천!

<망각의 사치코>-자폐스펙트럼이나 소시오패스도 약간 의심스런 융통성 1도 없는 강박적 캐릭터 주인공의 먹방, 오피스 드라마. 만화 원작을 살려 과장된 코미디가 웃기면서 결혼식에서 도망간 남자에 대한 복잡미묘한 심리묘사가 섬세하다. 추천!
<망각의 사치코 SP>-본 시리즈의 서두부분을 세밀하게 다룬 단편.

<일타 스캔들>(16부 예정)-근래들어 가장 웃음을 많이 준 드라마. 전도연 출연이라 믿고 보면 될 듯. 학원을 둘러싼 학부형들의 병적 집착과 남며 주인공의 고단한 삶의 드라마가 다양한 흥미를 준다. 강력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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