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이 거의 겪는 시간빈곤 '타임푸어'에 대해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신랄한 비판으로 독자들의 각성을 독려하는 의미있는 인문서이다. 항상 쫓기는 삶을 살지만 나아지는 것은 없으며 거대 권력에 휘둘린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꽤 오래 되었다. 그런 맥락에서 이 책에서는 일과 삶의 균형 면에서 현대인들이 시간빈곤으로 무너진 삶을 자각하고 그 근본과 원인을 제대로 알게 설명하고 있어 매우 흥미롭고 재미도 있었다.
언제부턴가 바쁨이 부의 상징으로 인식되었고 지위의 지표, 성공으로 가는 보증 등 과시적 행태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특히 디지털시대에 와서는 바쁨이 더욱 가속화되었고 노동의 연장과 그에 따르는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그림자 노동이란 말까지 생겼다. 식당을 가도 셀프서비스가 있고, sns로 쉬지도 않으며 멀티테스킹에 대한 오해까지 낳았다. 아무튼 한순간도 쉼이 없는 삶이라는 점에서 저자의 말에 계속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를 저자 한중섭은 역사적으로 먼저 풀었는데, 종교개혁 이후 여가를 죄악시 하는 프로테스탄트 윤리나 국가의 말을 잘 듣게 하는 공교육의 시작을 몇개의 분기점으로 짚었다. 다시말해 획일적 공교육이 국민을 바보로 만들어 국가에 기여하는 구조적 문제로 어어졌다는 것이다. 동양의 유교도 그렇고 긴 시간 동안 태어나서부터 어느 틀에 의한 교육이 반복되는데 그 것에 자유롭기는 힘든 일이다.
이렇게 '나쁜 바쁨'으로 세속적 성공과 맹복적 바쁨, 쓸모에만 집착하며 그 외에는 시간 낭비라는 굳어버린 인식에서 저자는 좋은 바쁨 즉 예술로 자유롭고 개개인의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행위가 매우 중요하다 지적하였다. 여기서 전에도 인터넷 강의를 통해 들었던 '호모 루덴스'가 언급되었는데, 놀이 그 자체에 목적을 둔, 재미를 추구하는 본능적 욕구를 더 중요시 해야하며 자발적 몰입과 승패와 관계 없는 음악, 미술, 더 나아가서 일부 덕업일치를 실천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더 나아가 '권태'에 대해서 삶의 균형을 제공하는 중요한 것으로 영감과 창조의 원천이 된다 하였다. 지루함이 뇌를 쉬게 하며, 사색하는 습관을 갖거나 자발적 외로움인 고독을 즐겨야 창의성으로 이어진다 하였다. 폄하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의 게으름을 새롭게 인지할 수 있었다.
외환위기 이후 생존경쟁이 치열해진 결과이긴 하지만 한국인의 물질주의는 바쁨으로 이어지고 성숙한 시민의식은 아직도 멀었다 하였다. 덧붙여 저자는 '야망 없이 살자는 야망'이란 말을 던지며 비교성향이 강한 한국에서 소득이 높아도 삶의 질은 오르지 않으니 바쁨의 파괴가 반드시 필요하다 역설하였다. 획일적 기준에서 벗어나며 각자의 리듬을 따르는 삶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로 마무리 하였다. 자본주의 속에서 성공과 목표로 폭주하는 바쁨에 내몰린 이 시대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책으로 한 번씩 읽어보기를 권장한다.
* 목차
프롤로그 | 스리랑카 기차엔 있지만 KTX에는 없는 것
1부 바쁨의 지배
현재를 사는 원시인, 미래를 사는 현대인
‘뺄셈’의 여가에서 ‘덧셈’의 여가로
원더우먼 증후군
불안에 대한 방어기제, 정체된 질주
2부 바쁨의 탄생
사건의 시간에서 기계의 시간으로
신의 미움을 산 베짱이
번영의 시대에 부족한 것
주 15시간 근로한다는 예언
3부 바쁨의 강제
빠르게 돌아가는 지구본
‘나 이렇게 바쁜 사람이야’
쉴 새 없이 울리는 카톡 감옥
4부 바쁨의 미래
역사에 남을 중대한 변곡점
두 가지 선택지, 워커홀릭 또는 실업자
바보를 길러내는 학교
쾌락에 길들여진 사람들
5부 바쁨의 파괴
바쁨에도 질이 있다
노는 것은 쓸모없다는 착각
권태를 찬미하다
‘잠은 낭비’라던 에디슨은 틀렸다
6부 바쁨 공화국
시간 빈곤자들
‘하면 된다’는 신화를 돌이키며
생존을 위해 돌진하라
한강의 몰락
야망 없이 살자는 야망
에필로그 | 다시, 원시인의 시간으로
참고 문헌
[예스24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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