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라, 생각하라] 슬라보예 지젝-세계 석학의 시선 책을 읽자




21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비판이론가, 최근 방한하여 특강으로 주목을 받기도 한 세계 석학 슬라보예 지젝의 2012년 출판된 정치사회 분석비판서 [멈춰라, 생각하라]를 읽었다.

 

지젝을 먼저 대하게 된 것이 우연찮게 케이블 어느 채널에서 보게 된 작년 경희대 강의 영상이었다. 어렵고 깊이있는 내용을 다각적이고 세밀한 분야별 예시와 사례를 통해 어느새 그의 이론과 주장의 이해도가 완벽하게 전해지는 매우 흥미롭고 재밌는 강의들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이분의 독특한 버릇이 한 번 보면 머리에 자동저장이 되는 것도 지젝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불러 일으켰는데, 동영상 강의를 본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사실 소리와 자막을 제거하고 보면 무슨 퍼포먼스 코미디인가 싶을 정도로 불안증 같기도 한 그의 정신 없는 증상이 매우 값진 강의 내용에 대한 몰입을 저해하는 게 사실이어서 가급적 소리와 자막만 집중하고 얼굴은 안 보려는 노력이 필요했다.

 

아무튼 그의 저서 중에 가까운 우리동네 도서관에서 바로 빌릴 수 있는 [멈춰라, 생각하라]를 먼저 접하게 되어 서론의 '월가점령시위 연설문'부터 들어갔는데, 거의 현재의 정치 사회 경제에 대한 핵심적이고 정확한 비판이 매우 집약적으로 정리되어 있어 뒤에 나올 본문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졌다.

 

사회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라는 두 가지 유토피아의 종말과 실패 앞에서 우리가 해야할 사고와 고민들에 대한 그의 논리정연하고 깊이있는-사실 초반부터 함축적이고 세계 전역에 걸친 사건 사고, 인물 등의 사회 전반적 내용을 바로 이해하기에는 좀 어렵다- 글들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여러 단계를 거쳐 예시와 비유를 들거나 신랄한 표현과 과장법 등 번역자의 다소 난해함을 가중시키는 딱딱한 직역-심지어 맞춤법도 엉성하다-도 한 몫 한듯 한 복잡한 문장이 속도를 내기에 벅차게 했다.

 

하지만 기발하고 천재적인 세계에 대한 이해와 남다른 통찰력에 가히 환상적이라는 감탄이 이내 들었으며, 하나의 논리를 도출하기 위해 다각적인 설명을 끌어내는 독보적 설득력, 과격하고 위험하다는 수식어를 달았지만 결코 궤변이 아닌 매우 정확하고 현실적인 그의 거침없는 맹렬한 비판과 비난의 목소리는 나를 비롯해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중요한 개기가 되리라 믿는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 "사유를 시작하라. 단순한 호기심에 그치지 말고 전 생애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을 시작해야 한다."라고 했다. 그의 글을 조목조목 읽으면서 그가 강조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부터 시작하면 어떨지 해서 이 책을 소개한다.

 

더불어 영화에 대한 조예도 깊은 그의 드라마 <더 와이어>나 여러 영화를 통한 이해를 돕는 비유도 후반부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참, 그가 직접 출연하는 <지젝의 기묘한 영화 강의>도 곧 감상하려 한다.

 

 

* 본문 중 발췌*

 

-자본주의가 현재로써는 부를 창출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사실이 역사적으로 입증되었지만, 동시에 이대로 방치될 경우 자본주의의 재생산 과정에서 착취, 천연자원의 파괴, 집단 고통, 불의, 전쟁 등이 수반된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이윤을 추구하는 재생산이라는 자본주의의 기본 틀은 유지하되, 글로벌 복지와 사회 정의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자본주의를 조정하고 규제해나가는 것이다. .... 결국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이 짐승(자본주의)을 길들이는 일뿐이다. ....

 

-만약 공화당에서 낙태를 금지하고 진화론 교육을 막으며 할리우드와 대중문화에 검열을 가한다면, 그ㅡㄹ의 즉각적인 이데올로기적 패배뿐 아니라 미국에 대규모 경기 침체를 초래할 것이다. 그 결과는 공생관계의 약화다. '지배계급'은 포퓰리스트의 도덕적 의제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하층계급을 억제하는 수단으로써 '도덕적 전쟁'을 용읺ㄴ다. 하층계급이 기득권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해치지 않고 분노를 표출하게 만들 수 있기 떄문이다. 이 말은 문화 전쟁이 곧 전치된 양식의 계급 전쟁이라는 뜻이다.

 

-모든 구성원이 동일한 교양을 공유하거나 존중하지 않는 한, 다문화주의는 법적으로 규정된 상호 무시 또는 혐오로 변질된다. 다문화주의에 대한 갈등은 이미 지배문화에 댛ㄴ 갈등이다. 문화끼리의 갈등이 아니라 어떻게 공존할 수 있고, 공존해야 하는가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 간의 갈등이다. .... "얼마나 많은 관용을 베풀 수 있는가"라는 자유주의적 질문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만약 '그들'이 자식들을 공립 학교에 못 가게 막는다고 해도, 여성에게 특정 복장과 행동양식을 강요한다고, 결혼을 미리 결정한다고 해도, 동성애자를 짐승 취급한다고 해도, 우리는 관용을 베풀어야 할까?

 

-우리의 과제는 단지 타인에 대한 관용을 넘어 진정한 공존과 다양한 문화의 혼합을 영속시킬 수 있는 저극ㄱ적이고 해방적인 지배문화를 추구하는 것... 공동의 투쟁을 제안하자.

 

-오늘날 영화 속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아랍계 테러리스트와 각종 범죄자나 반영웅들 뿐이고, 디지털 기술로 고전 영화에서 담배를 지우는 방법까지 논의되어왔다. 이 새로운 금기 자체가 윤리학의 위상이 크게 바뀌었음을 시사한다. 새로운 윤리학은 건강에 초점을 둔다. 우리의 건강과 복리를 위협하는 존재가 악인 것이다.

 

-그러나 이란은 더 이상 동일한 정권이 아니라 그저 부패한 수많은 독재정권 중 하나일 뿐이다. ... 이집트의 상황에서 가장 잔인한 아이러니 중 하나는 (민주주의로의) 전환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서방의 우려다. 마치 2011년 전에는 이집트가 법치국가라도 되었던 듯이 말이다. 오랫동안 무바라크 정궈 하에서 강요된 영구적 비상 사태였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서구 열강은 이제야 비민주적인 정권을 위선적으로 지지했던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300> 영화 도입부에서 레오니다스가 부패한 제사상의 메시지를 단호히 거부하는 것을 떠올려보자. 이들은 페르시아 군대를 막기 위한 군대 출정을 금지한다는 신탁을 전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신비한 황홀경 속에서 신탁을 받았다던 이들이 실은 페르시아에 매수된 상태였다. 마치 1959년에 달라이 라마에게 티베트를 떠나라는 신탁을 전했던 티베트의 '예언자'가 나중에 CIA에 매수되었던 것으로 밝혀 졌듯이 말이다.

 

-상황이 이토록 불길해진 것은 사면초가 상태의 만연한 절망감 때문이다. 확실한 돌파구가 없는데다, 지배 엘리트는 명백히 통치력을 상실하고 있다. 더욱 불안한 것은 민주주의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사실이다. .... 월가점령시위, 아랍의 봄, 그리스와 스페인에서의 시위 같은 사건들은 그렇게 미래에서 보내온 징후로 읽어야 한다. 바꿔 말하자면, 맥락과 기원을 바탕으로 사건을 이해하는 일반적인 역사주의적 관점을 뒤집어야 한다. ... 미래의 관점을 적용하여 현재에는 숨겨진 잠재성 있는 유토피아적 미래의 제한되고 왜곡된(때로는 심지어 도착적인) 파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기존 체계의 무한한 재생산은 불가능하다는 사실뿐이다. ... 중동의 새로운 냉전이나 경제적 혼란, 이례적인 환경 참사는 우리 곤경의 기본 좌표를 순식간에 바꿔놓을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열린 가능성을 충분히 수용하면서, 미래가 보내는 모호한 징후에 의거하여 스스로를 이끌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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