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 배를 어찌할꼬..."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하는, 영화 첫 장면의 에단 호크, 18년 만에 완성된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 <비포 미드나잇> 시사회를 피아노 제자분과 즐겁게 감상했다.
방학을 같이 보낸 아들을 이혼한 아내에게 돌려 보내는 주인공 '제시', 그가 공항을 나와 함께 차를 타고 가는 여인이 바로 1994년 유럽 횡단 열차에서 처음 만나고 그리고 9년 후 서점 '세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서 재회하여 운명이 된 '셀린느' 줄리 델피인 것이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핑풍 대사가 쓰나미로 밀려오는 그 특유의 맛깔난 대화의 재미가 서두부터 매우 긴 롱테이크로 쏟아지니, 이 두 연기자들의 신들린 폭풍 연기가 일단 감탄스러웠다.
특히 섬세하고 정교한 감성적 지성이 가득한 이 영화의 각본이 감독과 두 주연 배우들이 함께 작업한 것이라 하며, 연기와 대사에 있어서 미세한 부분까지 리얼함과 자연스러움이 그러한 이유로 매우 일품이라 하겠다. 이렇게 관객을 긴 세월 동안 사로잡은 '비포 시리즈'만의 독보적 몰입감은 매우 차별적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자식 걱정하는 부모로서의 얘깃거리까지 더해져 인생의 관록이 묻어나는 이 커플의 더욱 더 풍부해진 이야기가 그림같은 그리스를 배경으로 또한 그림같은 쌍둥이 달들과 함께 낭만적인 기운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소소한 생활상에서 인류의 미래와 남녀의 차이 또는 진정한 사랑에 대한 담론 등 두 주인공과 함께 휴가를 보내는 이웃들과의 다채로운 삶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어느새 그들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는 그럴싸한 기분까지 들었다.
'모든 게 한 순간, 우리 인생은 왔다 가는 것'이라는 노부인의 말이 가슴을 저리게 하기도 하며 그들의 해박한 세상 이야기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영화에 푹 빠졌다.
아무튼 나이를 먹고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모습이지만 여전히 사랑스런 제시와 셀린느의 무한 대화를 보자 부럽다는 생각이 강하게 밀려왔다. 저렇게 대화가 이어지고 감성코드가 맞는 내짝이 옆에 있다면 얼마나 좋고, 진정 사는 것 같지 않을까 싶었다.
영화의 재미는 매우 강한 유머도 큰 몫을 차지했다. 배꼽 잡는 끝없는 말싸움, 기지 넘치는 풍자와 은유법 등 반짝이는 표현력, 남녀에 대한 기가막힌 통찰이 계속 이어져 급기야 아슬아슬한 외줄타기식의 부부 싸움이 절정으로 달해 고품격 코믹 수다의 끝판을 보여줬다.
문학적 언어의 유희를 경험케 하는 개성 강한 멜로 로맨틱 코미디 <비포 미드나잇>은 영화가 다 끝나고 상영관을 나가면서 바로 다시 또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몇 안 되는 멋진 작품으로 강력 추천한다.

덧글
대학때 비포선라이즈를 보며 정말 로맨틱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는데..
이 영화 꼭 봐야겠네요.
감독과 배우들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
멋진 리뷰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