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6월 19일
[설탕의 세계사]-가와기타 미노루

개인적으로 짜거나 매운 자극적 음식보다 단맛을 좋아한다.
하지만 설탕이 그득한 과자, 빵을 자유롭게 즐기기엔 현대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병들이 너무 많다.
그래도 체질적으로 맵고 짠 것들에 부작용이 심한 나로선 적절한 선에서 단 것을 즐기고 있다.
그런데 설탕이 처음 쓰여진 과거에는 지금과 같은 비만 당뇨 충치의 적으로 취급되지만은 않았던 역사들이 있다. 또 설탕이란 먹을거리만의 한정된 이야기가 아닌 그 안에 담긴 많은 갈등과 국가와 사람들의 복잡한 사연들과 이해관계가 얽혀있는게 사실이다.
요즘들어 세계와 인류의 역사를 사람들의 생활상과 성장 발전의 시각에서 다룬 흥미로운 관점으로 살펴볼 수 있는 역사서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그런 면에서 이번에 읽은 [설탕의 세계사]는 재밌고 유익한데다 앞선 시각으로 역사의 흐름을 쉽게 이해하며 단번에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본문 중*
-유럽인들은 세계상품이 된 설탕을 생산하기 위해 카리브 해에 플랜테이션을 만들었고 일할 노동력 확보를 위해 맹렬한 기세로 아프리카인들을 납치해서 끌고 왔다. 노예무역과 설탕의 수입무역은 처음부터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게를 맺고 있었다.
-설탕을 만병통치약처럼 여기는 생각은 아라비아에서 십자군들이 돌아왈 때 함께 들어왔는데, 만성 영양불량에 시달리고 있었던 만큼 칼로리가 높은 설탕은 어떤 경우에나 즉효가 있는 약품이었다....(중략) 16세기 이후의 유럽에서는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절망적인 상태를 나타낼 때 '설탕이 떨어진 약방 같은'이라는 표현이 쓰일 만큼 설탕은 의약품으로서 꼭 필요한 물품이었다.
-청교도혁명을 피해 프랑스로 망명했던 전 국왕의 아들 찰스가 1660년 귀국하여 국왕 찰스 2세가 되었는데(왕정복고), 그의 아내가 된 포르투갈의 완녀 캐서린은 인도의 봄베이 섬을 지참금으로 가져와 차를 마시는 습관도 영국 왕실에 들여왔다. 아시아와 관게가 깊었던 포르투갈에서는 이미 왕실에서 차를 마시는 습관이 정착되어 있었다.
-'18세기 영국인 역사가'- 우리 영국인들은 세계의 상업금융에서 상당히 유리한 위치에 있기 떄문에 지구 동쪽 끝에서 가져온 차에, 서쪽 끝인 카리브 행에서 가져온 설탕을 넣어 마시더라도 여전히 국산 맥주를 마시는 것보다 싸다.
-유럽과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를 잇는 교역 링크가 만들어지고 영국이 그 중심에 위치해 있었기에 전 세계사람들이 생산한 물건을 가장 저렴하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차에 설탕을 넣는다'고 하는 발상은 이렇게 행복한 입장에 있었던 영국인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것은 오늘날까지도 영국의 생활문화로 자리잡았으나, 그 이면에는 무수한 아프리카 노예와 아시아의 가난한 농민들이 흘린 눈물과 땀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10여 년에 걸쳐 이루어진 광기와도 같은 주식거래들은 런던의 금융 중심지인 '시티'에 위치한 다수의 커피하우스에서 이루어졌다. 이렇게 주식거래를 원활히 진전시키는 역할을 했던 것도 설탕을 넣은 홍차나 커피 같은 이국적 음료들이었다.
-보이콧(boycott)이라는 표현은 소작인들을 지나치게 가혹하게 다루다가 오히려 소작인들로부터 보이콧당했던 아일랜드의 영국인 지주 찰스 커닝햄 보이콧의 이름에서 유래한것인데, 아메리카에서는 사람이 아닌 영국산 수입품에 대해 그 창끝이 겨누어진 것이었다.
-17세기 전후새너 아시아나 아메리카에서 건너온 설탕을 넣어 마시는 이국적 음료가 큰 인기를 끌었는데 초콜릿이었다.
-아침부터 충분한 칼로리를보급하여 정신이 번쩍 든 상태에서 일할 수 있는 노동자야말로 공장 경영자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였다. 이렇게 해서 카페인이 듬뿍 든 홍차와 고칼로리의 설탕, 설탕으로 만든 잼과 당밀 등은 영국인의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초식품으로 자리잡아 갔다.
-과거의 역사가들은 국가나 국민을 단위로 하여세계의 역사를 이해했다. 국민들이 근면하게 일하고 낭비하지 않았던 나라는 부강해졌고 나태한 사람이 많은 나라는 빈국이 되었다는 학설은 이런 발상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카리브 해에서 산업이 발달하지 못한 이유는 흑인들이 게을러서가 아니었다. 진짜 이유는 이 지역이 세계상품인 설탕의 원료, 사탕수수의 생산에 적합한 곳이었기 떄문이다.
유럽인들은 이곳에 플랜테이션을 건설하고 '모노컬처'사회를 도입함으로써 이 땅의 현재와 미래의 잠재성장력을 철저히 착취했다. 카리브해에서 설탕 플랜테이션이 성립된 것과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진행된 사실은 두 현상을 함께 보아야만 그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아케미카합중국 남부에 노예제도와 면화 플랜테이션이 성립된 것, 18세기까지 세계 면직물 생산 중심지였던 인도가 면화 플랜테이션 나라로 전락한 것도 모두 영국의 산업혁명과 떼어놓고서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 by | 2009/06/19 08:17 | 책을 읽자 | 트랙백 | 덧글(2)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