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제음악제(수원시향, 제니퍼 고)-다시 찾아온 음악의 감동 음악을 듣자








5월 '베토벤 장엄미사' 이후 오랜만에 간절했던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연주회를 비올라 제자 덕에 다녀왔다. 코로나 시국이지만 방역단계가 낮을 때 자주 KBS홀도 찾고 독주회도 다녔는데, 대규모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소리를 오롯이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좋은 홀에서의 연주는 코로나 이후 너무 귀해졌다.

'코로나 종식 기원음악회'라는 부제가 있는 제 38회 대한민국 국제음악제' 10월 16일 공연은 수원시립교향악단과 바이올린 제니퍼 고(1994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바이올린 우승, 현재 미국 거주)의 협연으로 한 자리 띄어 앉기지만 객석 가득한 청중의 클래식 음악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었다.

첫 곡으로 스메타나의 '팔려간 신부' 서곡이 깔끔한 현악들의 빠른 물결로 단박에 회오리치니 그동안 생생한 연주회장의 뛰어난 음질에 대한 한이 단숨에 풀어지는 기분이 들었고 꽉 찬 하모니에 가슴이 부풀었다. 이어서 화려한 경력과 최고 기량의 제니퍼 고가 입장하여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작품 번호 47을 연주하였다.

애절하고 감성적 바이올린 주제가 시작되고 섬세하고 감정 풍부한 바이올린에 맞춰 무게감 있는 수원시향의 연주가 드라마틱하게 펼쳐졌다. 일반인이 들어도 너무나 어려워 보이는 고난도의 카덴차 연주는 감정이 풍부하면서도 단호하고 개성 강하면서도 안정적인 카리스마가 일품으로 매우 훌륭한 연주를 선사했다. 더욱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2악장과 최고의 기량을 경험하게 하는 고난도의 화려한 바이올린 연주와 3박자의 멋스런 춤곡 형태(폴로네이즈)의 3악장(시벨리우스가 '죽음의 무도'라 부름)이 이어졌다.

엄청난 음역대를 오르내리는 제니퍼 고의 완벽한 바이올린 음색에 어느새 홀릴 것 같은 기분 마저 들었다. 다른 때보다 무대 가까이서 연주자의 몸짓까지 온전히 감상하며 이 곡의 남다른 맛을 느낄 수 있었다. 큰 박수가 밀려왔지만 앵콜은 생략되었다.

인터미션 후 흔히 연주되지는 않은 드보르작의 교향곡 8번이 시작되었다. 평화롭고, 아름답고 또는 힘있고 아기자기하며 목가적인 다양한 매력이 다 담겨있는 훙미로운 곡이었다. 이날 연주의 취지대로 희망적 기운이 분출하는 4악장의 멋진 연주까지, 푹 빠져 감상하였다. 아쉽지만 시간 제약 상 앵콜은 역시 생략되었다.

연주를 마친 비올라 연주자 이지윤과 귀가하면서 쌓였던 음악에 대한 대화를 쏟았다. 연주하는 단원들도 모두 이날의 연주에 대한 흥분과 기대가 컸다 하였다. 다만 연주자의 집중을 방해하는 악장 사이의 박수가 계속해서 나와 아쉽다는 이야기에 서로 공감했다. 악장으로 나뉘었지만 연주자들은 한 곡을 마치기 위해 최대한의 곡에 대한 몰입이 필요한데 중간에 박수는 호흡을 방해하니 기본적으로 음악에 대한 에티켓으로 모든 악장이 끝날 때 박수를 보내야 함을 기억하길 바란다.

아무튼 온전히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소리의 진동까지 음미하여 음악이란 세계의 진정한 황홀함을 간만에 느껴 제자에게 또 다시 고마웠다. 이렇게 아름답고 개인적으로 예술의 희열을 최고조로 느끼게 하는 클래식 음악을 한동안 잊고 살아야 했던 것이 더욱 안타깝게 다가왔다. 현장에서 직접 연주자의 호흡까지 전달하는 이런 연주회가 다시 우리 일상으로, 나의 삶으로 빨리 돌아오길 꿈꾸며 귀가하였다.



문화원 문예공모전 시상식 다녀오다 기타 재밌게 살자









지난 달에 내 수상소식을 알렸는데, 어제 시상식에도 다녀왔다. 구에서 후원하는 행사라 여러가지로 엄격하고 절차도 복잡해서 음석확인서까지 미리 준비해야 했고 전체 30명 가까이 되는 수상자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할 수 없어서 일부만 초대를 한 시상식이었다. 물론 사진 찍어줄 가족이나 친구가 없어 가까이에 있는 수상자께 내 차례에 사진을 부탁했다.

국민의례는 생략하고 동대문문화원 원장의 인삿말에 이어 시상식이 바로 이어졌는데, 시 부문에 여중생 두 명이 입상자였다. 나는 수필 부문 우수상을 받고 마지막에 수필과 시 합쳐 대상에 수상한 분까지 시상식이 마무리되었다. 다양한 연령대의 모르는 분들과의 모임이었지만 내가 사진을 부탁한 나보다 연배가 있어보이는 분과는 단체 사진 촬영 후 강당에 남아서 전화번호도 교환했다. 시 부문 우수상을 타신 인상 좋아보이는 전업주부셨는데, 다음에 인연을 더 이어가기로 했다. 혼자 살다보니 뜻이 맞아보이는 사람 한 사람이라도 인연을 쌓고 싶은 마음이 크다. 앞으로 일상적인 시기가 와서 많은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면 정말 마음이 따뜻해질 것 같다.

참, 입상자들의 글은 모아서 12월에 책자로 나온다 한다. 역사에 기록되는 아주 의미있는 일이고 자부심을 가지시라는 관계자분의 열정적인 목소리에 살짝 웃음이 났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디서 많이 들어본 자화자찬과 홍보의 향기는 애교스럽기도 했다. 내 글들이 신문이나 책 서문, 소식지 등등 꽤 긴 시간 올랐던 경험이 있기에 그렇게까지 흥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인쇄물로 나오는 것은 여전히 기분 좋았다. 귀가 후 원천징수된 액수의 상금이 입금되는 문자도 반가웠고.

(아래 사진은 부탁하여 찍은 사진인데, 평소에 사진을 많이 찍으시지는 않는 듯...ㅎㅎ 그리고 전날 펌을 했는데 자고나니 더욱 부풀었다. 저렇게까지 대두가 아님 주의. 나의 머리숱은 해결이 힘듦.)



문 닫는 우리동네 중형 쇼핑센터 정보 알림방







많은 이들이 힘든 지금의 코로나 시기, 그 중 눈에 띄는 건 사람들로 북적였던 번화가들이 이젠 을씨년스럽게 바뀌었다는 것이다. 명동이나 종로의 화려했던 상가들이 거의 문을 닫았고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별로 없다. 가게 자영업자는 당연하고 그렇게 비싼 지역의 건물주까지 걱정이 될 지경이다.

그나마 원거리 이동이 줄어 동네 상권은 연명하는 경우도 있어 우리동네 산책길에 자주 들렀던 중간 규모(지상 13층)의 쇼핑센터가 나의 아지트 역할을 했었는데, 결국 이곳도 문을 닫게 되었다. 몇 달 전부터 매장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니 결국 상품들이 다 비워지고 출입을 막았고, 이번 달부터 폐점에 의한 고별전에 들어갔다.

지금은 매우 가까운 거리이사하기 전 엄마, 아빠와 살던 그 예전부터 이곳에 엄마와 카트를 끌며 가끔 세일할 때 드나들고 했다. 2년 전 엄마가 돌아가시기 바로 전 세일하는 바지를 처음 받은 노인기초연금 본인의 돈으로 구입한 곳도 이곳이었다. 색깔도 좋고 허리도 편하다고 좋아하셨는데 결국 그 옷은 입어보지도 못하고 저세상으로 가셨다.

옛날 이름 '바우하우스'였을 때와 중간에 주인이 새로 바뀌어 '아트 몰링'이 되고 나서 꽤 오랜시간 영화관과 음식까지 편안한 느낌으로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하니 마음이 짠하다. 엄마와의 추억까지 날아갈 것 같다.

없는 이들에게 너무도 가혹한 지금의 시기이기에 그 곳에 종사하고 생활을 꾸렸던 많은 이들도 생각이 나고 코로나 이후 일을 아예 놓고 있는 나를 비롯해 처자식을 책임져야하는 내 남동생의 경제적 불안이 유난히 피부에 와닿고 있다. 양극화로 심각한 상황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기 전에 제발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기만을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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